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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에 나온 김득구와 레이 맨시니의 숨겨졌던 슬픈 이야기

by 이지크루 2023.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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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9일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이야기(꼬꼬무) 62화에 동양 복싱 챔피언이었던 김득구 선수의 불꽃같던 인생이 소개되었습니다. 김득구 선수의 마지막 대결 상대였던 당시 WBA 라이트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레이 맨시니 선수도 인터뷰에 응하면서 김득구 선수의 죽음에 대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세계 챔피언을 향한 이 대결에는 어떤 뒷 이야기가 존재하고, 김득구 선수 죽음으로 레이 맨시니 선수 처럼 인생이 송두리째 변해버린 김득구 선수 주변 인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득구 선수는 1956년  강원도 고성에서 다섯 자녀의 막내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2살 때 아버지가 사망했고, 어머니가 재혼해 원래 이름은 '이덕구'였으나 1967년 어머니가 새아버지 김호열씨와 결혼해서 김득구로 개명하게 되었습니다. 

 

동아체육관에 입문해 아마추어 선수로서 활동하다가 1978년에 프로로 전향했고, 1980년 12월 한국 챔피언 타이틀을 얻었습는다.  이후 1982년 2월 28일 OPBF 챔피언 전에서 김광민에게 심판 전원일치 판정으로 승리하면서 동양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김득구 선수는 전적은 괜찮았지만 세계무대 경력이 없어 세계 복싱계에선 무명인 선수였는데 갑자기 WBA 세계랭킹 1위가 되고 동급 최강으로 평가받는 세계 챔피언 레이 맨시니 선수와 매치업이 이루어진 부분을 이상하게 보는 시각이 많았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아한 세계 챔피언 도전전이 이루어진 것은 당시 세계적인 경기들의 프로모터였던 밥 애럼(Bob Arum)이 흥행을 위한 무리하게 경기를 성사시킨 이유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어찌됐든 김득구 선수는 죽기 전에는 링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는 유명한 다짐을 하고 1982년 11월 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특설 경기장에서 레이 맨시니와 타이틀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김득구 -출처 나무위키

 

9회까지는 김득구가 맨시니와 호각에 가까운 멋진 승부를 펼쳤지만 10회 때부터 체력 고갈로 난타를 허용한 계속 수세에 몰렸지만 김득구 선수는 정신력으로 버텨냈습니다. 14회에 지칠 대로 지쳐 가드를 완벽하게 올리지 못한 김득구의 왼쪽 머리에 맨시니의 라이트가 강하게 적중했습니다. 심판이 KO를 선언하며 맨시니의 승리가 확정되었지만 김득구 선수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2시간 30분에 걸친 뇌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뇌사 상태에 빠졌고, 어머니의 승인하에 산소마스크를 떼고 2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김득구 선수가 세상을 떠난 뒤 김득구 선수의 어머니는 우울증에 빠졌다가 3개월 뒤 "내가 가난해서 아들이 복싱을 시작했다. 결국 내가 아들을 죽인 것이다"라고 쓴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당시 경기 심판이었던 리처드 그린도 선수가 위험한 상태임에도 계속 시합을 강행시킨 끝에 김득구 선수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7개월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레이 맨시니 선수는 김득구 선수의 사망으로 인한 죄책감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맨시니는 김득구 선수와의 시합 이후로 자책감에 빠져 시합 간의 공백기가 길었으며, 전과 같은 패기 있는 복싱 스타일을 구사하지 못한 채 천재 복서의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번 꼬꼬무 방송을 통해 레이 맨시니 선수가 나와 당시 상황과 자신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김득구 선수의 세계를 향한 도전은 김득구 선수 죽음과 가족의 죽음을 계기로 세상 사람들에게 묻혔었는데, 꼬꼬무 방송을 통해 이렇게 다시 그의 삶과 도전 정신이 조명받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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